"시중가 170만 원짜리를 330만 원에?"... 서울교통공사 나라장터 고가 매입 충격
"시중가 170만 원짜리를 330만 원에?"... 서울교통공사 나라장터 고가 매입 충격
서울교통공사가 시중가 177만 원짜리 하드디스크를 335만 원에 샀다. 두 배 가까운 차이다. 처음 이 수치를 접했을 때, 솔직히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단순 착오나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라, 전국 공공기관 납품 계약 10건 중 8건이 시중가보다 비쌌다는 분석이 뒤따르자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세금이 쓰이는 곳에서 이 정도 격차가 구조적으로 반복된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조달 구조, 왜 이렇게 됐을까
공공기관이 물품을 살 때는 대부분 나라장터(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를 통합니다. 나라장터란 조달청이 운영하는 전자조달 플랫폼으로, 공공기관이 필요한 물품을 등록된 업체로부터 구매하는 공식 창구입니다. 일반 소비자가 쿠팡이나 네이버 쇼핑에서 최저가를 비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제가 몇 해 전 지인을 통해 소규모 IT 장비 납품 과정을 어깨너머로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규격서'였습니다. 조달 규격서(Specification Sheet)란 공공기관이 원하는 제품의 사양을 문서화한 것인데, 현실에서는 이 규격이 특정 제품에만 맞게 설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업체 입장에서는 경쟁 자체가 제한된 상황에서 납품가를 높게 써도 계약이 성사되는 구조였습니다.
납품 요구 계약(MAS 계약, Multiple Award Schedule)이라는 방식도 있습니다. 이는 조달청이 미리 적격 업체를 선정해두고, 공공기관이 그 목록에서 골라 구매하는 방식입니다. 경쟁 입찰이 아니다 보니 가격 압박이 약하고, 시중 가격 변동이 계약가에 제때 반영되지 않는 구조적 허점이 생깁니다. 이준석 의원실이 최근 1년간 이 납품 요구 계약 2만 3246건을 분석한 결과, 81.1%가 유사 사양 제품의 시중가보다 비쌌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 차액은 총 5628억 원으로 추산되었습니다. 물론 이 수치는 의원실의 비교·추산액이며 확정된 예산 손실액은 아닙니다. 하지만 방향성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도 짚어야 합니다. 고가 납품 논란은 과거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에서도 반복적으로 지적된 사안입니다. 지적이 있었음에도 구조가 바뀌지 않았다는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격 검증, 어디서 무너지고 있나
이번 서울교통공사 사례를 수치로 정리하면 격차가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 구매 품목: HDD(하드디스크 드라이브) 42대
- 나라장터 구매 단가: 335만 2000원/대
- 동일 제품 온라인 시중가: 약 177만 원/대
- 단가 차이: 약 158만 원(89% 초과 지급)
- 42대 기준 초과 지출 추정액: 약 6600만 원
한 건만 봐도 이 정도입니다. 이게 수만 건으로 늘어나면 5628억이라는 숫자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가격 적정성 심사(Price Reasonableness Review)가 형식적으로만 운용된다는 점입니다. 가격 적정성 심사란 공공기관이 물품을 구매하기 전에 해당 가격이 시장 수준과 비교해 합리적인지 검토하는 절차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절차는 담당자가 직접 비교 견적을 뽑아야 하는 수동 작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험상, 민간 기업에서도 구매 담당자가 여러 업무를 겸하면 가격 검증보다 납기 맞추기에 집중하게 됩니다. 공공기관이라고 다를 이유가 없습니다.
조달청도 이 문제를 완전히 외면한 건 아닙니다. 조달청은 나라장터 내 쇼핑몰 운영 및 가격 관리 지침을 공시하고 있지만(출처: 조달청 공식 홈페이지), 상시 가격 모니터링 체계가 자동화되어 있지 않다 보니 시중가 급락 상황을 실시간으로 반영하기 어렵습니다. 하드디스크처럼 가격 변동이 잦은 IT 부품은 특히 취약합니다. 1년 전 등록된 조달 단가가 그대로 유지되는 동안 시중가는 반토막 나는 일이 IT 업계에서는 드물지 않습니다.
감사원 역시 이 구조적 문제를 수차례 지적했습니다. 감사원 감사 보고서에서도 조달 가격이 시장가격을 초과하는 사례들이 반복 확인됐으며, 개선 권고가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출처: 감사원 공식 홈페이지). 그럼에도 유사 사례가 반복된다는 건, 권고가 실질적인 제도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방증입니다.
예산 낭비를 막으려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개선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문제는 의지와 설계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하거나 들은 민간 기업들의 구매 자동화 사례를 보면, 실시간 시장가 비교 API를 연동해 조달 단가와의 차이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자동으로 재검토 알림을 보내는 시스템이 이미 존재합니다. 공공 조달에도 이런 수준의 자동화가 도입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핵심은 조달 단가 갱신 주기를 단축하고, 시중가 모니터링을 자동화하는 것입니다. 현행 수의계약(隨意契約) 방식도 점검이 필요합니다. 수의계약이란 경쟁 입찰 없이 특정 업체와 직접 계약하는 방식으로, 긴급하거나 소액인 경우 허용됩니다. 그런데 이 수의계약이 남용되면 가격 경쟁 자체가 사라집니다. 물론 모든 구매에 경쟁 입찰을 요구하면 행정 비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저는 그 반론 자체는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절충점이 필요합니다. 금액 기준이 아니라 시중가 대비 초과율을 기준으로 자동 검토 트리거를 설정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투명성 확보 측면에서도 개선 여지가 있습니다. 공공데이터포털을 통해 조달 계약 정보가 일부 공개되고 있지만, 시중가와의 비교 데이터가 함께 공시되지 않으면 사실상 외부 감시가 어렵습니다. 이준석 의원실의 분석처럼 민간에서 비교 작업을 해야 비로소 문제가 드러나는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조달 투명성(Procurement Transparency)이란 공공기관의 구매 과정과 가격 정보를 국민이 언제든 확인하고 검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전제되어야 사후 감사가 아닌 사전 예방이 가능해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나라장터 가격이 시중가보다 비싼 이유가 뭔가요?
A.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납품 요구 계약 방식은 경쟁 입찰이 아니라 미리 등록된 업체 목록에서 선택하는 구조라 가격 경쟁이 약합니다. 둘째, 조달 단가 갱신 주기가 길어 시중가가 떨어져도 계약 단가는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HDD처럼 가격 변동이 잦은 IT 부품에서 이 격차가 두드러집니다.
Q. 5628억 원 손실이 확정된 수치인가요?
A. 아닙니다. 이준석 의원실이 최근 1년간 납품 요구 계약 2만 3246건을 분석해 시중가와 비교·추산한 금액입니다. 확정된 예산 손실액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다만 방향성 자체, 즉 시중가보다 비싼 계약이 다수라는 경향은 데이터가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Q. 이런 문제가 처음 터진 건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고가 납품 문제는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에서도 반복적으로 지적됐습니다. 그럼에도 유사 사례가 계속된다는 건 일회성 실수가 아니라 조달 시스템 설계 자체의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Q. 일반 시민이 이런 문제를 감시하거나 신고할 수 있나요?
A. 조달청 나라장터나 공공데이터포털을 통해 조달 계약 정보를 일부 열람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부조리나 비위 의심 사례는 국민권익위원회 청렴포털이나 감사원 공익감사청구 제도를 통해 신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시중가와의 직접 비교 데이터가 공시되지 않아 일반 시민이 접근하기엔 여전히 한계가 있습니다.
Q. 공공기관 납품 가격이 비싼 게 꼭 비리는 아니지 않나요?
A. 맞습니다. 납품 업체의 행정 대응 비용, 보증 조건, 규격 충족 비용 등이 반영되면 어느 정도의 프리미엄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동일 제품 시중가의 두 배 가까운 가격이 80% 이상의 계약에서 반복된다면, 그건 합리적인 비용 반영이 아니라 검증 시스템의 부재를 의심해야 하는 수준입니다.
세금이 쓰이는 곳에서 이 정도 격차가 구조적으로 반복된다는 건, 어느 한 담당자의 실수로 돌리기 어렵습니다. 조달 가격 모니터링 자동화, 단가 갱신 주기 단축, 시중가 비교 데이터 공시 같은 제도적 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합니다. 저는 이번 논란이 단발성 뉴스로 소비되지 않고, 조달 시스템 전반을 다시 설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국민의 세금이 쓰이는 만큼, 투명성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값이어야 합니다.
--- 참고: https://www.instagram.com/p/DeORLj0yyLE/?stkn=MTExem5xb2d6czV0ZA%3D%3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