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욕조 허용' 9일 만에 철회, 현장을 모른 탁상행정의 실체"
"고시원 '욕조 허용' 9일 만에 철회, 현장을 모른 탁상행정의 실체"
국토교통부가 2015년 이후 금지됐던 고시원 내 욕조 설치를 다시 허용하는 개정안을 행정예고한 지 9일 만에 "재검토하겠다"고 물러섰습니다. 제가 직접 고시원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이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황당했습니다. 1.5~3평짜리 방에 욕조라니, 그 공간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나 하고 내놓은 안인가 싶었습니다.
제가 살아본 고시원, 일반적인 인식과 달랐던 것들
고시원은 보통 "공부하러 단기로 들어가는 곳"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대학 졸업 직후 취업해서 홍대 근처 고시원에 한 달간 머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월 30만 원 선이었는데, 방에는 싱글 침대 하나와 작은 책상 하나가 들어가면 그게 전부였습니다. 문을 열면 침대 끝이 바로 닿는 구조였으니, 욕조는커녕 짐 가방을 제대로 펼쳐놓을 공간도 없었습니다.
샤워는 층마다 공용 샤워부스 두 칸을 다 같이 써야 했습니다. 출근 전 타이밍을 잘못 맞추면 길게 줄을 서야 했고, 눈치 보면서 빨리 씻고 나오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지방에서 갓 올라온 저에게 보증금 없이 한 달치 월세만 내고 바로 입주할 수 있다는 조건은 정말 고마웠습니다. 일반 원룸은 통상 보증금(임대차 계약 시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맡기는 보증 금액)만 수백만 원이 필요하고, 단기 계약을 받아줄 집주인도 현실적으로 없으니까요.
일반적으로 고시원은 수험생만 쓰는 곳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지방 상경 직장인, 일용직 노동자, 저소득 청년 1인 가구가 주 이용층입니다. 건축법상 고시원의 정식 명칭은 다중생활시설(多衆生活施設)입니다. 다중생활시설이란 불특정 다수가 공동으로 거주하는 시설로, 주택이 아닌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됩니다. 주택 건축 기준에 적용되는 최소 면적, 채광, 환기 규정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운영자 입장에서는 원룸보다 훨씬 낮은 건축 비용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욕조 허용이 왜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지는가
이번 개정안의 표면적 취지는 "중소기업 규제 개선 건의에 따라 안전과 무관한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욕조 설치는 의무가 아니라 운영자가 원하면 허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읽힙니다. 선택적 허용이라도 일단 허용되면 "욕조 있는 방"이 프리미엄 상품으로 등장하고, 그 기준이 시장 전체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기준선이 됩니다.
실제로 강남, 서초, 대학가 일대에는 이미 월 70만~100만 원을 넘기는 프리미엄 고시원이 성업 중입니다. 이른바 '고시원 고급화(高級化)' 트렌드입니다. 고시원 고급화란 기존의 저가 소형 방 개념을 탈피해 개별 세탁기, 냉장고, 전자레인지, 샤워실을 갖추고 원룸 수요를 흡수하는 형태로 진화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운영자 입장에서는 욕조를 추가하면 상품성이 높아져 월세를 더 올릴 명분이 생기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고시원이 주택이 아닌 근린생활시설이라는 점입니다. 근린생활시설(近隣生活施設)이란 주거지 근처에서 일상적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로, 주차장 확보나 소방 기준 등에서 주택보다 느슨한 규제를 적용받습니다. 여기에 욕조까지 허용되면 취사 불가 외에는 원룸과 사실상 같은 기능을 갖추게 됩니다. 규제는 원룸보다 덜 받으면서 임대료는 원룸 수준으로 올려받는 구조가 합법화되는 셈입니다. 욕조 넣고, 그다음엔 또 다른 것도 넣으려 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고시원과 원룸의 경계가 사라지고 가격만 올라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고시원 거주자 중 상당수는 이미 임대료 부담이 큰 상황입니다. 주거 취약계층(住居脆弱階層)이란 소득이나 자산이 부족해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유지하기 어려운 계층을 의미하며, 고시원은 이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저렴한 주거 옵션입니다. 아래는 이번 개정안이 주거 취약계층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정리한 것입니다.
- 욕조 설치 허용 → 고급형 방 등장 → 시장 전체 임대료 기준 상승
- 책상 설치 의무 폐지 → 고시원의 학습 시설 성격 약화 → 원룸 대체재로 포지셔닝 가속화
- 주택 건축 기준(최소 면적·채광·환기) 미적용 상태 유지 → 비용은 낮고 수익은 높은 운영 모델 고착화
- 저가 고시원 수 감소 → 일용직 노동자, 저소득 청년 등 주거 취약계층의 선택지 축소
탁상행정이라는 비판, 실제로 타당한가
국토부 누리집 행정예고 의견란에는 "현장 생태계를 모르는 최악의 탁상행정(卓上行政)"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탁상행정이란 현장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책상 위에서 만들어내는 행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저는 이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규제 완화는 소비자에게도 이롭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적어도 고시원 욕조 허용 건은 소비자, 즉 입주자 수요를 먼저 조사한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국토부는 중소기업 규제 개선 건의를 계기로 개정을 추진했다고 밝혔지만, 건의 주체가 누구인지, 입주자 수요 조사를 실시했는지는 끝내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5~8평짜리 일반 소형 원룸조차 공간 효율을 높이기 위해 욕조를 빼는 추세인데, 1.5~3평짜리 고시원 방에 욕조를 넣는 발상이 입주자 편의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거기다 청년 1인 가구의 실제 생활 패턴을 보면 샤워 빈도가 압도적으로 높고, 욕조는 청소와 물 관리 부담 때문에 활용도가 낮습니다. 좁은 공간에 욕조가 생기면 습기와 곰팡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현실적입니다. 그런 입주자들이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은 불법 가격 담합 단속, 임대료 상한제(賃貸料上限制, 임대료가 일정 수준 이상 오르지 못하도록 상한선을 두는 제도) 도입, 방음 규제 강화 같은 실질적인 주거 안정 대책입니다. 국토부가 결국 9일 만에 재검토를 선언한 것은, 애초에 현장 수요를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채 개정안이 나왔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출처: 국토교통부 공식 누리집)
고시원의 역할 변화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원래 고시원은 공무원·사법시험 준비생을 위한 학습 공간이었습니다. 방마다 책상을 놓도록 한 규정도 그 취지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책상 설치 의무까지 폐지하면 정부 스스로 "고시원은 더 이상 학습 시설이 아니다"라고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그러면서도 주택에 적용하는 최소 주거 기준은 여전히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입주자에게 불리한 부분만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주거 기본법상 최저 주거 기준(最低住居基準)이란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주거 생활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면적, 시설, 환경 기준을 말하는데, 고시원은 이 기준의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주거기본법)
자주 묻는 질문
Q. 고시원 욕조 설치가 왜 2015년에 금지됐나요?
A. 고시원이 욕조를 갖추면 사실상 무허가 원룸처럼 운영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2015년부터 욕조 설치가 금지됐습니다. 주택이 아닌 다중생활시설로 분류되는 고시원이 원룸 기능을 흡수하면, 주택 건축 규제를 우회하면서 임대 수익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이번 개정안은 그 금지 조항을 다시 풀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습니다.
Q. 고시원 방에 실제로 욕조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나요?
A. 일반적으로 욕조를 넣으면 공간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직접 살아봤기 때문에 회의적입니다. 고시원 방은 통상 1.5~3평 수준으로, 싱글 침대와 작은 책상만 놓아도 이동 공간이 거의 없습니다. 5~8평짜리 소형 원룸조차 요즘은 공간 효율을 위해 욕조를 빼는 추세인데, 그보다 훨씬 좁은 고시원 방에 욕조를 넣는 건 현실과 맞지 않는 발상입니다.
Q. 욕조 설치가 허용되면 고시원 월세가 실제로 오르나요?
A.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미 강남·서초·대학가 일대에는 월 70만~100만 원을 넘는 프리미엄 고시원이 늘고 있습니다. 욕조가 추가되면 운영자 입장에서 "욕조 있는 방"을 프리미엄 상품으로 내세워 임대료를 올릴 명분이 생깁니다. 선택적 허용이라도 시장에 고급형 기준이 생기면 전체적인 임대료 기준선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Q. 고시원 거주자를 위한 실질적인 주거 안정 대책은 어떤 게 있나요?
A. 업계와 입주자 측에서 꾸준히 요구하는 것은 불법 가격 담합 단속, 임대료 상한제 도입, 방음 규제 강화입니다. 고시원이 주택이 아닌 다중생활시설로 분류되는 한 주거기본법상 최저 주거 기준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법적 분류 체계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욕조 허용보다 이런 방향의 논의가 훨씬 더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Q. 고시원은 언제 이용하는 게 현실적으로 적합한가요?
A. 제 경험상 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렵거나, 단기로 한 달 미만~수 개월만 머물러야 하는 상황일 때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입니다. 일반 원룸은 단기 계약을 거의 받아주지 않고 보증금도 수백만 원 이상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고급화가 진행될수록 저가 고시원 자체가 줄어들 수 있어, 주거 취약계층의 선택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점이 앞으로의 걱정거리입니다.
정부가 9일 만에 입장을 바꾼 건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번 논란에서 더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왜 처음부터 이런 안이 나왔느냐"입니다. 고시원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 공간에 필요한 건 욕조가 아니라, 오늘 버는 돈으로 오늘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는 낮은 가격입니다. 이번 재검토가 진짜 입주자 수요 조사와 실질적인 주거 안정 대책 논의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 참고: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277/0005805977